이육사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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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러블리즈 조회 35회 작성일 2021-06-21 16:13:0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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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광야'…이육사 (1944년 1월 16일 순국) / 비디오머그

1943년 1월 1일 식민치하의 경성. 새하얀 눈길 위를 말없이 걷고 있는 두 남자. 고요한 침묵을 깨는 한 남자의 담담한 다짐.

“가까운 날에 난 북경에 가려 하네···”

그해 봄, 홀연히 북경으로 떠나버린 남자. 그리고 1년 뒤, 1944년 1월 16일, 순국의 넋이 되어 돌아온 그 남자는 40평생 17번의 옥살이와 44편의 창작시를 남긴 수인번호 264, 민족저항시인 ‘이육사’다.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퇴계 이황의 14대손으로 태어난 이원록(源祿)은 학식과 예를 갖춘 선비들이 모여들던 할아버지의 사랑방에서 ‘경술국치’라는 나라의 암울한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일본 유학을 떠난 원록은 그곳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집단학살사건’으로 무참히 희생된 조선인과 중국인 수만 명의 억울한 죽음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곧바로 귀국해 항일문화운동에 뛰어들어 조국의 독립을 모색한다.

하지만 1927년, 장진홍 의사가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투척한 사건에 연루돼 형제들과 함께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작하게 됐다. 수인번호 ‘264’. 원록은 ‘이육사’ 라는 이름을 짓고 스스로 운명을 바꾼다.

시 쓰는 독립투사가 된 이육사는 조국과 중국을 오가며 항일 운동에 전념했고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해 최우등 졸업을 했다.

‘펜’이 무기였던 그는 ‘총’에 익숙한 명사수가 되어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일제 경찰의 집요한 추적에 비밀공작원 신분이 탄로 나 서대문형무소에 다시 수감되었다.

이듬해 겨울 국경을 넘고 벌판을 달리던 이육사의 봄날을 향한 열망의 육필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1943년 독립운동을 위해 다시 북경으로 떠난 이육사는 그해 여름 잠시 조국으로 돌아왔을 때 일제 경찰과 헌병대에 붙잡혔다. 이육사가 4살 난 외동딸에게 남긴 마지막 한 마디, “다녀오마”.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독립을 1년여 앞둔 1944년 1월 16일 새벽 5시. 이육사는 마흔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중국 북경의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조국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뒤에야 비로소 발표된 유작 '광야'.
일제의 잔혹한 고문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저항의 붓을 꺾지 않았던 민족저항시인 이육사.
그가 떠난 지 72년이 지난 오늘. 조국의 치욕은 얼마나 씻겨졌을까. 시인이 뿌린 씨는 어떤 결실을 맺었을까.
‘광야’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외침은 72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없는데...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 이육사 '광야'

콘텐츠제작일 : 2016.01.16
유튜브게시일 : 2017.01.18

다시 읽는 '광야'…이육사 (1944년1월16일 순국) / 비디오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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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ᅦ한흥 : 김동길
조ᅦ한흥 : 이어령
노해준 : 일본 진짜 양심이 없나? 아직도 반성 안한거임?
Quoque Transibit. Hoc : 진짜 이렇게 광복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고 왜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이 땅에 살아계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아주 조금만 더 살고 계셨다면 광복을 보셨을텐데... 하는 마음도 있고...
모든사용자 : 감사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겄습니다

다큐드라마 민족시인 이육사 '광야에서 외치리라' / 극본 김항명 ㅣ 김흥기 금보라 임동진 이치우 연운경 [추억의 영상] KBS 1984.12.22 방송


싼듀 : 2부는 윤동주, 1부는 이상화?
Yas Koba : 김홍기(정중부), 이치우(양길) 같은 배우님들의 젊었던 시절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재미 있었습니다.
거기에 드라마의 진행과 함께 시도 많이 삽입되어 2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완주경전 전라 장항 경춘선 :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은 해방후 군사경력자로 한국군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강도 일본이 또다시 한국을 쳐들어 온다면 그땐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싸울 것인가?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완주경전 전라 장항 경춘선 : 위대한 민족시인이자 저항시인 이육사 선생 선생의 시는 좌절에서 희망으로 어두운 현재에서 미래지향 적인 희망의 시를 남기셨다...
천불올라 : 금보라씨 순정만화 여주인공같음

'광야' '청포도' '절정' '꽃', 시인이자 강인한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후손 이옥비 여사 인터뷰

내 고장의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다가오면 이육사(본명 이원록ㆍ1904~1944ㆍ건국훈장 애국장) 시인은 우리 마음에 살포시 떠오른다. 그의 시들이 더욱 아름답고 강력한 이유는 독립운동가로서 그의 정신이 글을 떠받히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시인’의 한 명으로서 이름 높지만, 독립운동 과정과 가족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육사 시인의 외동딸이자 이육사문학관 상임이사로 근무하는 이옥비(78) 여사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이육사문학관에서 만나, 가족들이 기억하는 육사의 모습을 들어봤다. 대나무로 다리 살점을 떼내는 고문을 당해 옥에서 입은 바지는 늘 피에 적셔 있었다. 베이징(北京)의 일제 감옥(일본은 1937년 베이징 점령)에서 옥사하기 약 5개월 전 중국으로 이송되면서, 역으로 찾아온 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아버지 다녀 오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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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 따님이 이렇게 고우신 면모를 가지셨어요
이육사 시인도 분명 자랑스러워 하실 것 같아요
이 인터뷰 덕분에 이육사 시인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항상 응원합니다!!
jang행운 : 저도 이육사(이원록님) 시인의 절정 청포도를 읽으면 눈물이나고 슬프고
아픈 것이 시인님의 복잡한 감정이 제 마음에 그대로 들어와
평범한5선발 : 와 진짜 처음 알았음 264가 수감 번호였다니...
jason : 울할머니...
shrewsbury : 그냥 너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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